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이다. 예년 같으면 추석(秋夕)이란 무더위가 지나가고 가을바람이 불어와 반팔셔츠 입기가 다소 거북스러워지는 계절이건만, 금년 추석은 전혀 추석답지가 않았다.
이처럼 무더운 날씨에도 자녀들이 “선산에 다녀오시지 않겠느냐?”며 앞장서니 어찌 따라나서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옷 채비를 하는데 아내가 탐탁해 하지 않는다.
TV에서 응급환자들이 구급차에 실려 응급센터를 찾았지만 이곳저곳에서 거절당해 결국 숨졌다는 보도들이 적지 않는 상황에서 말벌이라도 쏘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는 것이다.
민심(民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야정당들이 가장 중요시할 때가 ‘추석 민심’과 ‘설 민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추석 민심의 최대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채상병 특검’도 ‘김 여사 특검’도 ‘이재명 재판’도 아니고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이른바 ‘의료대란’이 아닐까 싶다.
벌써 반년이 넘게 서울대학교병원을 비롯한 주요 대학병원에서 야간당직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전공의(專攻醫) 대부분이 의료현장을 떠나는가 하면 심지어는 교수들까지도 진료시간을 제한하면서 심각한 의료공백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와 의사단체 간의 대화가 공전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 이쯤 해서 2,000명 증원을 두고 전개된 정부와 의사단체 간의 대립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떠나 국민의 입장에서 시비(是非)를 가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첫째, 그 숫자를 떠나서 의사(醫師)를 증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투표가 실시된 바가 없으므로 딱히 어떻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여론조사 등을 종합해 보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만약 의사단체에서 증원 자체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국민적 공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둘째, 몇 명을 늘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여 발표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관련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국회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가운데 충분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되다가 의사단체의 반대로 없었던 일로 했던 때부터 의사 증원문제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지속되어졌어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코로나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정부가 ‘백지화’보다는 ‘논의를 계속한다.’라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때부터 논의 시스템이 지속하여 왔다면 최소한 이번에는 국민적 대타협이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셋째, 의사 숫자를 얼마만큼 증원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하는 점이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의외로 간단한 문제이기도 하다. 즉, 증원을 전제로 하여 의과대학을 가지고 있는 대학의 의견을 먼저 수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마다 교수의 수와 질, 강의실 및 실험실 여건 등 교육여건이 천차만별이고, 이는 그 대학의 교수들 이상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교수들도 의사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대학에서는 신입생을 늘려 뽑지 않겠다.”라는 억지를 부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면 충분히 합리적 숫자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를 기르는 일은 빵틀에서 붕어빵 찍어 나오듯 되는 일이 아니다. 전국에 40개의 의과대학이 있다고 하는데 그 교육여건은 실로 많은 차이가 있는 그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모든 국립 의과대학에 200명씩 일률적으로 배분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거야말로 지난 196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 나타났던 군대식 행정이 아닐 수 없다. 오죽했으면 정원을 늘려 준다고 하여도 해당 의과대학 교수들이 모두 반대를 하겠는가….
오랫동안 대학에 근무하면서 행정에 참여했던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하나의 전공 단위에서 일거에 20명 이상의 신입생을 늘려 뽑는다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도 교육여건이 좋았을 때의 일이라고 할 때 의과대학 규모가 극히 영세한 몇 대학을 고려한다면 합리적 증원 규모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추진과 이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 속에서 40개 의과대학의 2학기 등록률이 3.4%에 그치고 있다니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신입생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와 의사단체들의 대승적 타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국민 누구라도 아팠을 때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하여….
▲오수열 교수 © 위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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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열 교수 프로필]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조선대에서 법인사무국장, 사회과학연구원장, 사회과학대학장, 기획실장, 정책대학원장,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정년퇴임하였으며, 민주평통상임위원, 성균관 자문위원, 광주유학대학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한국 동북아학회 이사장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