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3형제 중 막내동생의 부인 즉 내겐 작은숙모 되시는 분께 꼭 글로 쓰겠다고 약속했기에 그날 밤에 있었던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사계절을 누리지만 쌀농사를 본업으로 삼던 시절에는 매우 척박한 토양과 쌀농사를 편하게 짓기에 여의치않은 환경이었다.
그 시절엔 쌀농사를 지어 많은 식구들이 먹을 식량과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 물품을 수급하기에 부족했다.
그랬기에 벼를 베어낸 논에 보리를 심었고 보리가 익어 수확하는 계절이 5월 6월 초였기에 보리가 익을 때까지 농사지은 쌀로 버티며 생존해야 했던 시기에 생겨난 말이 보릿고개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보리농사를 짓던 시절에 모내기를 하기 전 한참 더위가 물오를 때쯤이면 보리를 추수해서 온 집안 안팎으로 덕석(멍석)을 깔고 보리를 말렸다.
집 마당에는 놓아먹이는 닭이 으레 열서너 마리쯤 노닐었다.
내 초등학교 입학 전으로 기억되는 데 아니면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더위에 툇마루에 앉아 할랑거리면서 마당에 말리기 위해 멍석에 깔아놓은 보리를 헤집으면서 먹어대는 닭들을 쫓기 위해 긴 간지대(기다란 대나무)를 가지고 닭을 쫓았다.
그날은 기억대로라면 유난히 더웠고 들녘에 나가신 어른들을 대신하여 나는 닭을 쫓는 일을 맡아 긴 장대를 곁에 두고 보리를 지키는 임무에 충실하고 있었다.
간간히 멍석 위의 보리를 발로 저어주며 고루 보리가 말려지는 일까지 해야했던 나는 꾀가 나서 한참을 툇마루에 앉아 공상에 젖어있었는데 한 떼의 닭들이 배가 고팠던지 시위대처럼 멍석으로 들이닥쳤다.
처음엔 훠이훠이 어린 목청을 가다듬어 쫓아도 통하지 않았다. 굳건하게 보리를 헤집어 마구 멍석 밖으로 보리를 흩어버리는 닭들이 성질을 돋구었다.
우리 아버지 닮아 성질이 한참 급했던 나는 마당가 두엄자리 옆에 놓여있던 지게작대기를 들고 닭들에게 돌진하면서 작대기를 내리쳤다. 작대기를 내리친 순간 나보다 성질 급한 닭 한 마리가 쭉 뻗었다.
이구. 어린속내에 뛰는 가슴은 진정할 길이 없고 천지사방을 둘러봐도 위로 보면 하늘이요, 뒤를 돌아보니 늘 제자리에 있는 산일지니. 가슴 속내 가득 찬 겁이란 놈이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가 없이 툭탁거렸다.
지게 작대기 들고 설친 나보다 한 대 맞고 쭉 뻗은 닭보다 한술 더뜬 성정 가지신 아버지는 다짜고짜 전후 사정 묻지도 않고 닭 살인이 아닌 살계사건에 대해 추궁하실 건 뻔할 거고.
그 순간 벼락보다 더 빠르게 뇌를 회전시키고 집 바깥을 살피며 누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없는 담장 넘어 누가 넘겨다보나 안 보나 살피고… 텃밭 울타리 사이로 행여 목격자 있을까 조바심 내며 가만가만 살핌서 잽싸게 행동 개시.
쭉 뻗어버린 닭을 가만히 안아서 다리를 주물러 닭장에 갖다가 기대놓고 마치 박제시킨 꿩을 본 적 있어서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기 시작했다.
양쪽 날개사이에 나무 막가지를 꺾어 날개를 받쳐 세우고 요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살아있는 닭으로 보이게 하려고 용을 썼다.
오구오구 어린 내 눈으로 암만 살피고 또 빙빙 돌면서 보아도 영락없이 살아 숨 쉬는 닭임에 틀림없으렷다.
식은땀 흘림서 기다린 시간이 여삼추. 드디어 점심시간 되자마자 삼시세끼 끼니에 진심이신 우리 아버지 들이닥치시고. 하늘이 도왔는지 한 떼의 닭들이 떼지어 아버지 있는 멍석으로 시위대처럼 또 다시 덤비고….
우리 아버지 인심좋게 목청으로 훠이훠이. ‘나도 아버지 닮아 처음엔 그렇게 했지요’ 숨죽이며 바라보는데 닭들의 요지부동에 열 받으셨는지 내가 닭 때려잡았던 그 작대기를 손에 드시더니 그대로 돌진 매진.
꼬꼬댁꼬꼬 작대기 휘둘림에 놀란 닭들이 놀라자빠진 흉내를 내며 요란스럽게 도망을 갔다. 그런데 딱 한 마리 그러니까 내게 박제당한 체로 닭장에 기대 서있는 그 닭,
겨를없이 성질급한 아버지 휘두르는 작대기가 더 빨리 움직이는가 싶더니만.
“어라, 뭔 놈의 닭이 이리도 쉽게 죽어분다냐.”
야호, 그날 우리가족은 나의 부지중 살계사건으로 인해 닭죽으로 포식했다.
이 사건을 가슴에 묻어둔 지 어언 사십 년 가까웠을 무렵이었으니 친정식구들이 집안 행사로 많이 모였던 날이었다.
나의 구성진 입담으로 실감나게 전해주었을 때 까무러치는 식구들이 그날만큼 심하게 웃어본 일이 없었다며 젊잖다고 자부하시는 박씨 가문의 여인들과 넘정네들 할 것 없이 웃어대셨다.
그중에서도 얌전과 젊잔으로 섞어 새침떼기로 유명하신 숙모은 웃으시느라 사망 직전까지 다녀오셨다는 나만 보면 조르셨다. 어릴 적 내 이름을 부르시며
“경화야, 그때 그 이야기 한번만 더 해줄래? 아이, 한 번만 더해주라. 네가 뭔 이야길 해도 재미있지만 그 이야기 말이다.
그, 닭이야기 한번 더해줘야.” 하시며 만나면 졸라대는 통에 그런 숙모가 내 완전범죄 이야기보다 더 신기합니다 하면서 그 재미진 이야기 글로 써드릴게요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秀重 박하경 수필가 프로필]
출생: 전남 보성. 시인, 수필가. 소설가
한일신학교 상담심리학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경희사이버대학사회복지, 노인복지학 전공
월간 모던포엠 수필 등단(2004).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2007).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와 경기광주문인협회 회원, 현대문학사조 부회장, 지필문학 부회장, 미당문학 이사, 현대문학사조 편집위원. 종자와 시인 박물관 자문위원. 제2회 잡지 수기 대상 문광부장관상 ,경기광주예술공로상 등 수상, 시집 : <꽃굿><『헛소리 같지 않은 뻘소리라고 누가 그래?> 소설집: < 군남여사 나셨도다> 외 동인지 다수 등 (현)송운당하경서재(유튜브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