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거리마다 ‘임대’ 표지가 붙은 빈 상가들이 줄을 잇고 있고, 고물상에는 폐업한 식당과 카페의 자재들이 쌓여 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야 할 터인데, 이제는 안보 불안마저 엄습해오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북한이 장기화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전쟁에 러시아를 돕기 위해 병력을 보내면서 이미 전투지역에 도착한 일부 병력이 실제 전투에 참전했다는 보도와 함께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천 km 떨어진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세계화 시대’와 ‘지구촌 시대’가 더욱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정치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제자의 물음에 족식족병(足食足兵)이라고 대답하였거니와, 이는 요즘 말로 하자면 ‘경제와 안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우리의 상황은 족식족병이 모두 도모되고 있지 못한 셈이니 가히 정치의 실종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정치(政治)란 무엇일까? 수많은 학자가 여러 가지로 정치를 정의(定義)했지만, 필자는 “정치는 사회적 가치(價値)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의 말이 가장 적실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정된 사회적 가치를 잘 배분하기 위해서는 분배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 즉,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권위를 지녀야 할 터인데, 이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여기에서 다시 공자의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선지로지(先之勞之)하라”가 그것이니 요즘 말로 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은 힘 있는 자가 먼저 하라.”는 것으로 조금 확대하면 ‘먹을 것이 있을 때는 힘 있는 자가 나중에 먹어야 한다.’라는 뜻이니 서양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통령은 영부인의 리스크에 휘말려 허우적거리고 있고, 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제1야당의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찌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선 대통령의 경우, 목사의 꼬임에 넘어갔든 어쨌든 아내가 고가의 가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니 국민들 앞에 사과하면 어떨까? 야당 대표의 경우 또한 몇 푼 되지는 않지만 역시 아내가 법인카드를 잘못 사용한 것은 사실이니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할 때에 다시 공자의 말씀을 원용해 보자.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하라.”고 하였느니 “잘못을 범하였거든 고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잘못했거든 솔직히 시인하고 고치면 되는 것이다.
지난날 여러 대통령도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일에 직면한 적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 현철 씨의 문제로, 김대중 대통령 역시 아들 홍업씨의 문제로 국민에게 머리 숙여야 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씨 문제로 사죄했으나 결국 탄핵까지 당해야 했다.
어려운 경제와 안보 상황 속에서 대통령과 국회가 언제까지 김건희 여사와 이재명 대표 문제에만 매달려 정치를 실종시킬 셈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도 국회에는 수많은 민생법안이 심의되지 못한 채 의원들의 눈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사이 많은 어린이와 노동자들 그리고 소상인들이 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죽거나 다치거나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리민복(國利民福)이 도모될 터인데, 올해 달력도 달랑 두 장 남은 것을 바라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하기야 공자도 어지러운 세상을 한탄하며 제자들과 함께 말년을 보내야 했으니 세상은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수열 학장 © 위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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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열 교수 프로필]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조선대에서 법인사무국장, 사회과학연구원장, 사회과학대학장, 기획실장, 정책대학원장,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정년퇴임하였으며, 민주평통상임위원, 성균관 자문위원, 광주유학대학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한국 동북아학회 이사장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