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터울 동생이 둘째 딸과 함께 제주도에 있다고 했다. 또? 그새 갔어? 놀라서 물었더니 한강 작가의 제주 4.3을 다룬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를 읽고 그 족적을 찾아 둘째 딸과 함께 3박 4일의 여행 중이란다. 벌써 일 년 전 일이다.
동생의 둘째 딸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내 유수 은행에 공채로 합격했는데 6개월 일하고 전혀 행복하지 않다면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라이선스 하나쯤은 가져야겠다며 약학을 전공해서 현재 약사가 된 기념을 겸한 동행이라고 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책을 읽고 제주에 다가선 감회를 엄마는 엄마대로, 딸은 딸대로 절절하게 아팠다고 너무 슬펐다고 전하더라.
4.3 학살의 현장을 돌면서 저들의 묘비 앞이거나 묘비조차 없는 흔적들 앞에서 펑펑 울면서 돌았다고 했다. 울면서 학살의 현장을 돌고 나니 관광지로 생각하며 힐링했던 그 순간들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노라고 한탄하는 소릴 들었다.
동생 모녀가 저토록 역사를 사유하면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한민국이 존재하려면 제주 4.3이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선 안 될 이유기도 하다.
제주 4.3에 관한 책을 읽고 난 어땠었나…. 순이 삼촌을 읽고, 제주 4.3을 묻는 십대에게,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를 읽고 나 어떻게 했더라?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 어땠더라….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되었지.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라고.
이 문장을 읽은 후론 눈이 내리면 4.3이, 제주가, 학살이, 어린아이들 목숨의 절멸이 눈송이처럼 마음에서 모아지고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울음을 재촉했었지.
살과 뼈와 장기와 목숨들이 너무나도 쉽게 부서지고 끊어지는 환영이 겹쳐들어 내 두 손을 우두커니 들여다보곤 했지.
그리고 무던히도 제주에 닿는 연습을 했어. 두 번째까지 차마 닿지 못했던 4.3에 세 번째는 닿아야지, 닿아봐야 도리겠지, 생각만 분주하다 몇 년을 속절 없이 흘려보내고 있지. 아직도 그에 대한 소속 없는 분노는 명확하지 않아서 심장이 지끈거리곤 해.
섬처럼 흩어지는 슬프고 분한 억하심정에 그 아우성을 귀 막고 눈 감았음에도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의 찢어져 낙하하는 공포로 점철된 가쁜 호흡이 보여서 몸서리 치기도 해. 작가의 신랄한 언어의 살점들이 난장질로 내 영혼을 해부한 거야.
요즘 전쟁에 대한 일설들이 공기 중에 섞여 나돌다 나돌다 내 귓가에도 날아들더니 지인들이 모이면 전쟁이 주제가 되고 전쟁이 실제로 일어나면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을 앞세우는 일이 잦다.
태어나자마자 가장 빨리 접한 소식이 일제 강점기에 대한 아픈 이야기였고 6.25에 관한 몹쓸 한국전쟁 이야기였다.
그로 인해 숱한 고생이 서린 한 맺힌 할머니의 비명과 같은 인생사를 들어야 했고, 어머니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난장에서 가난을 이겨내며 식구들을 건사해야 했던 지난한 고생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커야 했다.
이러니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현실에서 한반도 주변 정세와 북한과의 관계를 유심히 살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한반도의 전쟁은 남북한이 벌이는 전쟁일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천년을 넘어선 영원한 숙적인 중국은 끝없이 팽창의 꿈을 멈출 생각이 없다. 저들은 대만을 복속하려 할 것이고 그 다음이 한반도임을 불을 보듯 뻔한데, 그 옆에서 확장을 꿈꾸는 슬라브족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다.
세계의 패권을 절대 놓지 않으려면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해야 하는 미국, 그리고 언제라도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의 야심 속에서 우린 두 동강이 난 나라를 지켜내야만 하는 숙명 앞에 서 있다.
이 와중에 북한의 김정은이 러시아 푸틴을 만나 협정을 맺으면서 중국의 속내가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것이 보인다.
중국의 전쟁 프로젝트 플랜A가 완벽하게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건 나뿐이 아니겠지. 한마디로 김정은이 뜬금포를 터트리며 미래 전쟁의 판을 다시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만을 접수하겠다 으르렁거리면서 대만을 칠 때 북한은 대한민국을 묶고 러시아는 일본을 묶어놓는 시나리오를 써놨을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와 협정을 맺자 전쟁에 대한 대본을 수정해야 함에 있어 온갖 짜증이 난 티를 팍팍 내고 있다.
중국이 과연 대만을 침공할 것인가? 현 공산당이 권력을 유지하려면 대만을 먹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중국 시진핑이 홍콩을 억압하면서 야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을 지켜보면서 대만은 각성했을 것이고 전 세계가 눈을 뜨면서 과연 중국의 대만에 대한 시나리오가 먹힐까? 되려 중국의 대만 침공은 분열을 가져 올 확률은 없는 것일까?
중국이 분열이 되면 우리에겐 평화가 올 거란 기대치가 있기에 중국의 분열을 제발 바라면서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유럽 같은 강대국 사이에 낀 대한민국은 어떻게 처신하고 영악하게 굴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두고 매일 고심하며 정세를 지켜보는 게 일이다.
전쟁의 광기는 또 다른 제주 4.3을, 더 잔혹한 동족상잔 6.25를 재생산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족 말살의 위기를 가져올 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 군대는 징집제로 최상의 엘리트들이 포진되어 있고 최첨단의 무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인재들이라는 것이다. 징집제의 장점을 최대로 보유하고 있음에 믿음을 가져보기로 한다.
만약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처럼 평야에서 마주치는 백병전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세계 2차대전에 참전했거나 이를 목격한 소비에트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여자들의 시각에서 본 전쟁이야기를 글로 담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의 비극이 내가 살아있는 날 동안 일어나지 않기를….
이 나라의 여인들의 삶이 전쟁으로 인해 슬프지 않기를, 아프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秀重 박하경 수필가 프로필]
출생: 전남 보성. 시인, 수필가. 소설가
한일신학교 상담심리학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경희사이버대학사회복지, 노인복지학 전공
월간 모던포엠 수필 등단(2004).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2007).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와 경기광주문인협회 회원, 현대문학사조 부회장, 지필문학 부회장, 미당문학 이사, 현대문학사조 편집위원. 종자와 시인 박물관 자문위원. 제2회 잡지 수기 대상 문광부장관상 ,경기광주예술공로상 등 수상, 시집 : <꽃굿><『헛소리 같지 않은 뻘소리라고 누가 그래?> 소설집: < 군남여사 나셨도다> 외 동인지 다수 등 (현)송운당하경서재(유튜브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