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시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48회)
오수열(조선대학교 명예교수·광주유학대학 학장)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4/10/3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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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아시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본문 중에서 ]



최근 영광(靈光)에서 한·일 두 나라 인사들이 참여하는 토론회가 있었는데 좌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해 달라는 주최 측의 요청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교수님과 함께 다녀왔다.

 

스스로를 ‘옥당골’이라고 내세우며 다른 지역에 비해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자부하는 곳이지만, 아무래도 이곳을 대표하는 것은 ‘법성포 굴비’ 아니겠는가….

 

“이왕 이곳에 온 김에 점심은 법성포에 가서 드시는게 어떻겠는냐”는 동료 교수님의 제안에 흔쾌히 그렇게 하기로 하였고, 제법 규모 있어 보이는 식당에 들어 섰다.

 

법성포하면 ‘굴비정식’아닌가. 주저하지 않고 메뉴는 그것으로 주문하였는데., 그 다음부터 눈에 들어오는 식당의 분위기가 무척 생소해 지기 시작하였다.

 

‘밀차’에 음식을 싣고 배식하는 이른바 서빙하는 여성들이 인근 마을에서 용돈 벌러 나오는 순박한 우리네 시골여성이 아니라 어머어마한 체구에 새까만 얼굴의 아프리카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광주의 식당들과 시골의 이곳저곳에서 이른바 ‘필리핀댁’과 ‘월남댁’으로 불리우는 동남아 여성들의 일하는 모습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던 터이다.

 

그러나 이처럼 새까만 얼굴에 몸집마저 우람한 아프리카 여성들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마주한 교수님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 또한 놀란 모습이었다.

 

이 모든 것이 출산감소에 따른 일손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모르는 바 아니다.

 

잠깐 테이프를 60여년 전으로 돌려보자, 나의 초등학교 2~3학년 시절이야기다. 같은 반의 여학생 중 ‘강딸그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사연인즉 엄마가 그 친구까지 딸만 연속으로 여섯을 출산하자 이제 제발 딸은 그만 낳고 아들을 점지해 주시기를 소원하여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이른바 남아선호와 함께 다산(多産)시대를 상징하는 그 시대의 웃지 못 할 시대상이었던 셈이다.

 

어떻든 6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OECD국가 가운데 최저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그 부작용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골에서 어린애들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은 오래전 일이고, 지난날 수백 명의 학생들로 북적이던 초등학교들이 폐교되어 방치된 곳이 한 두곳이 아니다.

 

어디 시골 뿐인가. 대도시에서도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로 적지 않는 초등학교들이 폐교되거나 통폐합되어 가고 있고, 산업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니면 작업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어제는 창립 때부터 참여해 왔던 지역 장학회의 이사회에 다녀왔다. 금년도 장학생 선발을 매듭짓고, 내년도 사업방침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다자녀가구의 개념을 기존의 자녀수 3명 이상에서 2명이상으로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지금 젊은이들이 출산은 물론이고, 결혼마저 기피하는 상황에서 세 명의 자녀를 기대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나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벌써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추석이 다가왔다. 평소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부모님을 찾아 귀성인파로 붐비는 것이야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가장 붐비는 곳이 해외로 떠나기 위한 국제공항들이라고 한다.

 

이제 세태가 변한 것이다.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 드리는 것이 가장 큰 효도로 생각했던 시절은 이제 지나간 추억이 된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어느 인구학자의 예견대로 언젠가 외국의 서적에 “옛날 아시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내용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섬뜩한 일이다.(2023년 작)

 

 

본문이미지▲오수열 학장 © 위드타임즈

[오수열 교수 프로필]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조선대에서 법인사무국장, 사회과학연구원장, 사회과학대학장, 기획실장, 정책대학원장,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정년퇴임하였으며, 민주평통상임위원, 성균관 자문위원, 광주유학대학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한국 동북아학회 이사장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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