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염을 잘라내고, 껍질을 벗겨내 삶아 먹기 알맞게 다듬어 놓고 나니 [본문 중에서 ]
|
아직은 더위가 물러갈 때가 아닌데 날씨가 의외로 서늘하다. 아마도 일본열도 쪽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태풍 ‘할롱’의 영향인 것으로 보이지만, 어떻든 무더위가 주춤하면서 벌써 가을이 우리 곁에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다.
아침 일곱시만 되면 출근 준비에 부산함을 떠는 내가 아홉 시가 되어도 늘척 지근하게 있는 것을 보고 외출 준비를 마친 아내가 “오늘은 집에서 쉴라요?”라며 묻는다.
‘점심 약속이 있으니 오전은 집에 있을라네’라는 나의 대답에 “잘 생각했소, 그럼 나는 나가요”라며 현관을 나선 뒤의 우리 집에는 나만 덩그렇게 홀로 남는다. 애들이 장성(長成)하여 부모 곁을 떠난 거의 모든 가정의 보편적 모습일 것이다.
밀린 글을 쓰려고 침대 위에 탁자를 올려놓는 걸 보며, “오늘 당신 운세가 눈을 보호하라”라고 되어 있으니 오늘은 책을 가까이하지 말라며 탁자를 치워버린 탓에 딱히 할 일도 없어져 버렸다.
신문 한켠의 ‘오늘의 운세란’을 신뢰하며 신경 쓰는 아내를 보며 참으로 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그 또한 가족을 위한 것임을 아는 까닭에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큰집에 홀로 남아 ‘응접실 걷기’를 삼십여 분, 그것도 지루함이 다가올 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일거리를 찾는 것이다.
이때 나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어제 후배 교수가 보낸 준 강원도 정선의 옥수수 상자가 눈에 띈 것이다. ‘옳지, 저것이나 다듬어 놓아야지.’ 일거리가 생겼다는 건 참으로 생기(生氣)가 도는 일이다.
수염을 잘라내고, 껍질을 벗겨내 삶아 먹기 알맞게 다듬어 놓고 나니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가르친다. 이제 약속된 점심을 위해 슬슬 외출 준비를 해도 좋은 시간이 된 것이다.
교단생활 속에서도 황칠(黃漆) 연구에 몰두하여 일명 황칠 박사로 알려진 정(丁) 국장님 일행과 이러저러한 정담을 나누며 마음에 점을 찍었다.
집에 어떻게 돌아갈까? 를 생각하는데 때마침 날씨가 한여름의 퇴얕볕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이 정도면 걸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운동 삼아 한번 걸어보지 뭐’ 믿는 건 손에 쥐어진 부채 하나와 손수건뿐이지만 용기를 내보기로 하였다.
사실 운동도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나면 아주 어렵지 않은 법이다. 식당을 나와 동구청 오거리를 거쳐 전남대 병원에 이르니 벌써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증심사 입구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저기까지 어떻게 갈까”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렇지만 내가 평소 강조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유시유종(有始有終) 아닌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증심사 입구가 어느덧 눈앞에 다가왔는가 하면, 다시 집 근처의 배고픈 다리가 지척이나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우리 집 대문 앞에 서 있지 않은가. 높은 습도 덕분에 온몸이 흠뻑 땀에 젖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집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이 대견하기만 하다.
땀 흘린 뒤의 만족감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더욱이 집에 돌아와 시원하게 내뿜는 샤워기에 온몸을 맡길 때의 상쾌함이란….
석양 녘 귀가한 아내가 집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말끔하게 손질된 옥수수를 발견하고는 “오메 당신이 해놨소?”라며 반색을 한다. ‘그럼 나 말고 누가 했겠는가’라는 대답에 아내의 말이 충격적이다.
“당신 너무 변하요. 너무 변한디. 이렇게 착한 일 일 안 해도 좋으니까 오래 사시오” 말의 내용인 즉 사람이 너무 변하면 죽는다는 것으로, 착한 모습으로 변하지 않아도 좋으니 오래 살라는 것이다.
하기야 다른 친구들이 모두 퇴직한 나이에 아직 현직에 남아 매달 꼬박꼬박 월급 받아다 주는 남편이니 살아 있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이럴 때는 젊잖게 대응 하는 게 상수다.
“먼저 가더라도 자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네….” 이렇게 여름날의 하루가 지나갔다. (2014년 작)
▲오수열 교수 © 위드타임즈
|
[오수열 교수 프로필]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조선대에서 법인사무국장, 사회과학연구원장, 사회과학대학장, 기획실장, 정책대학원장,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정년퇴임하였으며, 민주평통상임위원, 성균관 자문위원, 광주유학대학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한국 동북아학회 이사장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