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단심가(18회)
푸른 치마저고리로 단장한 배추 처녀... / 박하경 수필가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4/05/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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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닥 쭉 찢어 뜨거운 김 모락모락 오르는 밥 한술에 처억 얹어~~[본문 중에서]   



 

내가 태어나는 날 나는 널 만난 기억은 없어. 아마도 그런 것 같아.

 

그렇지만 넌 나보다 먼저 우리 가족들이 웃고 떠들고 우는 것까지도 지켜보면서 함께 있었어. 점점 키가 커지고 몸집도 커지고 마음도 커지면서 세상에서 널 가장 많이 보았고 널 가장 많이 만났고 가장 많이 대하고 자란 거 같아. 이 사실에 대해서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걸.

 

너는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거기에 있었고 길을 나설 참이면 나 없는 집에서 식구들을 지켜줄 그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늘 너를 챙겼지. 결혼을 한 후에도 남편과 함께 했던 시간보다 너와 함께 한 시간이 훨씬 많았어. 너도 알고 있지?

 

너는,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들과도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어. 식구 중 누구는 좀 더 오래된 너를 사랑하고 좋아했지. 그렇지만 나는 조금 달랐어.

 

두 아이를 낳고 난 이후부터는 오래된 너를 만나는 것이 싫어져서 싱싱하고 상큼한 너를 좋아하게 되었지. 지금까지 쭈욱 그래 왔는데 요즘에 와선 달라진 것 같아. 갓 만들어진 너를 좋아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오래된 너를 껴안는 맛도 자주 즐기게 되었거든.

 

너는 언제나 우리의 반김을 묵묵히 말없이 맞아 주었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너를 향해 불평을 늘어놓거나 못마땅한 기색을 내어놓아도 너는 우리를 떠나려는 내색을 가져 본 적이 없었지.

 

아주 오랜 조상의 조상의 때부터 그 후손의 후손에 이르기까지 너는 우리들의 사는 모양새를 지켜본 존재인지도 몰라. 그 오랜 역사를 낱낱이 지켜본 너이기에 더더욱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로 자리를 잡았는지도 모르지.

 

너의 모습은 아주 다양해서 사계절 철철이 매무새를 달리하지. 너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내야 할까. 노랗게 속살을 꽉 채우고 푸른 치마저고리로 단장한 배추 처녀들 같아.

 

입맛 그득히 도는 무 총각들은 또 어떻고. 너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할 만큼이나 배추 처녀들을 탐내게 만들고 마는 재주를 지녔지 넌. 땅 밑 깊숙이 몸을 묻고 땅의 정기를 빨아들여 살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무 총각들에게도 고스란히 너를 빚어내기 위해 여인네들의 애무가 뒤따랐어. 밭에 심긴 이런저런 남새들을 보면 여인네들은 널 만들고 싶어 몸살을 앓아대었지.

 

너의 모습은 매우 매혹적이며 고혹적이야.

 

온몸을 붉은 드레스로 감은 채 갖은 고명으로 치장한 모습이라든가, 희디흰 속살을 드러내고 누워 붉은 고추 눈썹과 푸른 쪽파로 무늬를 입은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군침을 삼키게도 하고 입맛을 다시게도 하고 때론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지.

 

이러저러한 여러 이름들과 모양과 맛과 멋을 지닌 너의 이름이 김치라는 것을 너는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거 맞지?

 

아! 난 지금 김치 단심가를 부르고 있는 중이야. 한 가닥 쭉 찢어 뜨거운 김 모락모락 오르는 밥 한술에 처억 얹어 한입 가득 먹고 싶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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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경 수필가 ©위드타임즈

[秀重 박하경 수필가 프로필] 

출생: 전남 보성. 시인, 수필가. 소설가 

한일신학교 상담심리학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경희사이버대학사회복지, 노인복지학 전공 

월간 모던포엠 수필 등단(2004).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2007).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와 경기광주문인협회 회원, 현대문학사조 부회장, 지필문학 부회장, 미당문학 이사, 현대문학사조 편집위원. 종자와 시인 박물관 자문위원. 제2회 잡지 수기 대상 문광부장관상 ,경기광주예술공로상 등 수상, 시집 : <꽃굿><헛소리 같지 않은 뻘소리라고 누가 그래?> 소설집: < 군남여사 나셨도다> 외 동인지 다수 등 (현)운당하경서재(유튜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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